비전 (3): 온 세대가 함께하는 교회
사도행전 2:38-42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참빛교회 비전 시리즈를 접하고 있다. 지난 두주 동안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고 어떻게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하여 나누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켜 준다. 디모데후서 3장16-17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보면 항상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신 것을 본다. 시험을 당하실 때에도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셨고 말씀을 항상 가르치셨으며 십자가에 못 밖혀 돌아가실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셨다. 우리 또한 하나님 말씀을 바로 안다면 우리의 삶이 지금보다 훨씬 더 복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시편1편 말씀처럼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복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우리의 삶의 목적은 주님의 영광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며 살아야 하는데 죄로 말미암아 그 영광에 아무도 이르지 못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하지 못한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루셨다. 우리가 마땅히 살았어야 하는 삶을 예수께서 대신 살아주시고 또 마땅히 죽었어야 하는 죽음을 예수께서 대신 죽으셨다. 예수께서 이루신 그 의를 우리에게 주시고 또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다. 이 모든 것이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다.
그러니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처럼 내가 열심히 하여 하나님 앞에 나의 의를 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열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입히신 것이다. 그리고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을 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단지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면 된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사실이 하나있다. 그리고 이 사실이 바로 우리 참빛교회의 비전이요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의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 38절 말씀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라고 전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성령을 이미 선물로 받은 베드로가 오순절을 지키기 위하여 모인 큰 무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죄가 해결이 됬고 우리가 원래 목적대로 하나님을 위하여 살 길이 있으며 그 길은 축복의 길이다고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축복의 약속의 말씀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가 중요하다. 39절에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자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다. 나이를 막론하고 인종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게 바로 우리가 가슴에 세기고 나아가야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교회 비전이 무엇인가? 비전2020 “모든 세대가 헌신하며 세워가는 신앙 공동체”. 모든 세대가 함께 헌신하고 함께 세워가는 신앙 공동체로 거듭나는 것이 바로 우리 교회의 비전이다.
최근에 저희 교회에 오신 분들은 아마 의야하게 생각하시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저희 교회는 가족예배를 드린다. 어린 아이들로부터 아브라함회 어르신들까지 다 함께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이중언어로 예배를 드린다.
그것뿐이 아니다. 수요일날 진행되는 한어 성경공부와 주일 오전에 진행되는 영어 성경공부가 내용이 같다. 그리고 앞으로 더 자리가 잡혀가면 어린 아이들의 주일학교 내용도 어른이 공부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세대가 함께 헌신하고 함께 신앙 공동체를 세워가려면 같은 것을 듣고, 배우고, 묵상하고, 같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모두가 다 같이 나아가는 교회이다.
다음 주에 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겠지만 예배와 성경공부, 주일학교 등, 앞으로 몇가지 사역에 변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같은 것을 공부하고 함께 나아가고, 그리고 모든 세대가 함께 모이며 친교하며 사역하는 일들은 꾸준히 계속 진행 될 것이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학생들은 학생 예배에 참석하고 어린이들은 어린이 예배에 참석하고 어른들은 어른 예배에 참석하면 더 자신의 좋아하는 예배 스타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고 더 공감이 가는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더 좋은 분위기 속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지 않는가? 내가 공감가는 말씀을 듣고 좋아하는 찬양을 부르고 나에게 맞는 스타일의 예배를 드리면 우리의 신앙이 더 자라나고 성숙해지지 않을까?
많이들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교회들이 그렇게 사역을 한다. 제가 첫 전임 사역을 했던 교회도 영아부 전도사, 유아부 전도사, 유치부 전도사, 유년부 전도사, 중고등부 전도사, 대학부 목사, 영어부 목사, 청년부 목사, 장년부 목사, 노년부 목사 등 각 부서마다 목회자가 있었고 각 부서마다 따로 예배를 드렸고 사역을 따로 감담을 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나이 차이뿐 아니라 언어 차이도 있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많이들 생각한다.
그렇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해서 가장 하나님을 기뻐하시게 하는 방법은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올바른 신앙생활은 대부분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생활이었다. 아브라함은 아들들과 함께 할례를 받았고 모세는 유월절 무교병을 가족이 함께 먹도록 지도했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라고 명했으며 잠언도 자녀들에게 훈계를 받도록 지시한다. 신약에서는 고엘류의 온 가족이 함께 세례를 받았고 사도바울은 빌립보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고 온 가족이 함께 믿음의 가족으로 들어오도록 인도했다. 또한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하여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씀을 전하여 그 시대 교회 안에 아이들이 예배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해준다.
이렇게 함께 예배 드리고 함께 사역하는 것은 성경적임을 우리는 볼 수 있다. 물론 불편하고 내가 희생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 효율적이지 못하고 예배 같지 않는 예배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과연 따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더 효율적인가? 죄송하지만 아니다. 최근에 진행된 많은 연구들이 말하는 바는 젊은 친구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바로 주일학교, 중고등부에 있다고 한다. 주일학교, 중고등부에서 자신들의 삶에 적용되는 메시지는 들을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윗 세대로부터 신앙의 성숙함은 전해 받지 못한 것이다.
한국만 봐도 그렇다. 주일학교가 잘 돌아가고 있는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데 결과가 어떤가? 한국 청년중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숫자는 청년인구의 3% 미만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 자녀들에게,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잘 물려주는 것은 너무나도 큰 과제이다.
저는 온 세대가 함께 사역에 임할 때에 신앙이 물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함께 예배 드리고, 함께 선교하고, 함께 전도하고, 함께 말씀을 공부하고, 함께 기도 드리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어떤 분들은 예배가 아이들에게 너무 어렵지 않을까 걱정들 하시는데 잘 준비만 하면 충분히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아이들을 과소평가하고 우리가 힘들어 하는 것이 문제이다.
때론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 때문에 아이들을 예배에서 배제시킨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한다. 예배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예배를 잘 드렸다는 생각과 무언가를 예배를 통해서 얻었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드린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셨는가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은 어떤 예배를 기뻐하실까? 부모와 다른 사람들의 편의를 위하여 아이들은 “어린이” 예배에 두고 드리는 예배? 아니면 온 가족이 함께 하나님 앞으로 같이 나오는 예배?
할아버지의 칠순, 팔순 잔치를 하는데 할아버지가 아이들이 없어서 조용하고 엄숙하고, 정리가 잘 되어있는 그런 잔치를 기뻐하실까 아니면 손자 손녀들이 떠들고 뛰어 놀고 하는 그런 잔치를 기뻐하실까?
물론 너무 시끄러워서 다른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방해가 되며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부모의 노력과 훈계가 필요하다. 잘 준비가 되고 우리 모두가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자녀들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 내용이 자신에게는 적용이 안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하실런지 모른다. 나는 자녀가 없어서, 혹은 자녀가 다른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아니다. 이 말씀은 우리 모두가 다 듣고 함께 실천해 나가야 하는 말씀이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한 가족이고 교회 안에서 아이들은 우리 모두의 자녀이며 어르신들은 우리 모두의 부모이시기 때문이다. 아이 하나 하나를 귀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며 배려하고, 또한 어르신들을 내 부모 공경하드시 공경하고 섬기고, 또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고, 나누고, 함께 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며 더 성숙한 모습으로 자랄 것이다.
다 아시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각각 다른 달란트와 은사를 주셨다. 그리고 다른 직분으로 우리를 불러주셨다. 그래서 서로 협력하고 맡은 일에 충성하며 사역을 감당할 때에 더 온전한 교회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하나 더 나아가서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다른 은사를 주셨는데 한 사람의 삶 속에서 그 사람의 삶의 시기마다 또한 다른 은사를 주셨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 아이였을 때 그리고 학생이었을 때 장년이었을 때 그리고 노년때에. 때마다 주신 은사가 다를 수 있다. 혹은 같은 은사라도 다르게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이 말씀이 무엇이냐면 세대가 다른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서로에게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배우고, 아이들은 어른에게 배우고, 크고 놀랍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더 온전히 채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저는 많은 이민 교회를 봐왔다. 특히 여러지역에서 교회들을 섬기고 봐왔다. 대부분의 공통점이 다음세대를 위하여 사역을 해야 한다고 외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갑게도 대부분 이 말은 교회교육 프로그램을 잘 운영해서 어른들이 편하게 예배 드릴 수 있도록 하며 장년부의 부흥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희 참빛교회는 제가 부임하기도 훨씬 전에 다음세대 뿐 아니라 모든 세대가 함께 하며 함께 성장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모든 세대가 함께 협력하고 헌신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워 나가자.
내가 조금 불편하고 하더라도 서로를 위하여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이 우리를 위하여 조금의 불편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모든 세대가 헌신하여 세워가는 신앙 공동체, 참빛교회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