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된 삶을 살려면
요한복음 2:1-11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
전에는 참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복 받으라는데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원한다.
왜 열심히 일하며 사는가?
왜 아이들을 달달 볶는가?
(미국이나 한국이나 한인 부모의 극성은 알아줘야 한다. 아시안 학생들이 나 시험 망쳤어 하면 real fail 인가 Asian fail 인가 물어본다고 한다. Asian Fail 은 97점 이하다.)
모두가 다 행복을 위해서가 아닌가?
사실 복 받으면서 사는게 어떤 면에서는 믿는 사람들이 추구해야 하는 삶이다.
예수님은 상산수훈에 8복의 이야기를 먼저 나누셨다.
또한 시편1편은 복 있는 사람은…이라고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약속하신 것은 큰 축복이다.
이러한 복을, 행복을 우리 모두 누리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 복을 나누며 살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 CCM 가수 중에 “조수아”라는 가수가 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의 답가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를 부른 가수다.
가사를 보면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그리고 그 사랑 전하기 위해, 주께서 택하시고 이 땅에 심으셨네,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라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노래 중에 “사랑의 편지”라는 곡이 있다
“주께서 나를 그리스도의 편지로 세상에 보내셨으니, 사람들이 나를 통해 그리스도를 읽을 수 있도록…”
공통점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았으면 그 사랑과 축복을 혼자만 누리지 말고 나누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그런 복의 근원의 삶을 살아야 한다.
아브라함이 받는 약속은 복 있는 삶 뿐 아니라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인 것 처럼, 우리 모두 복의 근원이 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오늘 본문을 통하여 나누기 원한다.
오늘 말씀은 사실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 주셨다.
사실 1월17일날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기도 했다.
(혹시 기억하시는 분? “잊어버리는 것도 은혜다”)
요한복음을 시작하면서 한절 한절 다 묵상하다보면 몇 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씀 드렸다.
Dr. James Boice (필라델피아 제십 장로교회) 목사님은 요한복음으로만 200편이 넘는 설교를 하셨는데 오늘 이 본문만 가지고 10편이 넘도록 설교를 하셨다.
이 말씀 안에서 너무도 많고 큰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율법의 시대에서 은혜의 시대
• 옛 것에서 새 것이 나옴
• 무에서 유가 창조
• 시간의 계념 – 4절 말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 주님의 때는 언제인가? 성경에 나오는 시간은 Chronos 와 Kairos 로 나뉜다.
o Chronos – 그냥 흐르는 시간
o Kairos – 정해진 때
• 넘치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 어마어마 한 양의 포도주
많은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고, 그 하나 하나가 우리에게 엄청난 도전과 은혜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오늘 초점을 맟추고 싶은 것은 어떻게 복의 삶을 살 수 있느냐다.
우리는 오늘 말씀에 나오는 하인들을 통해 배울 수 있다.
하인들은 무엇을 했는가?
하인들은 순종했다.
포도주가 다 떨어진 상황에서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께서 하라는대로 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그 하인들은 예수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시자 아무 말 없이 순종하며 물을 채웠다.
사실 저는 이 말씀을 많이 접하면서 그냥 넘겼던 적이 많다.
신학원 때 요한복음 수업을 듣기도 하고 또 전도사 시절, 교육 목사 시절 요한복음 성경공부 교제를 지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냥 많이 넘겼던 부분이다.
그런데, 니카라과에 계셨던 선교사님께서 이 말씀을 해 주셨다.
하인들은 물을 어떻게 채웠을까?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란다.
요즘처럼 수도에서 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니카라과에서는 우물을 파는데 그런 후 자동펌프로 물을 끌어 올린다.
그런데 예수의 시대는 그 것도 아니다.
정확히 하인이 몇 명이 있었고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우물에 가서 물을 길러 오고, 그 물을 항아리에 담은 후 다시 우물에 가서 퍼 왔을 것이다.
우물은 어디에 있는가?
동네 밖에 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의 대화를 보면 동네 밖에 우물이 있고 그것을 길러 가는 것은 꽤 큰 일이었다.
그런데 20~30 gallon 이나 되는 항아리 여섯개를 채우려면 아주 오래 걸렸을 것이다.
그런데 하인들은 불평하지 않고 순종했다.
순종하고 나서 연회장에서 그 물을 떠다 주자 그 물을 포도주로 변했다.
그것도 처음보다 훨씬 더 맛있는 포도주로.
이것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모른다.
이스라엘의 결혼 문화는 일주일 동안 같이 즐기고 연회를 즐긴다.
여기에 포도주가 중요하다.
랍비들이 말 “포도주가 없으면 기쁨도 없다.”
연회를 배푸는데 포도주가 떨어지면 연회를 배푸는 측이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예수님은 잔치를 배푸는 신랑측에 기쁨을 주셨고 잔치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포도주로 즐거움을 주셨는데, 이러한 축복 뒤에는 하인들의 순종이 있었다.
이 하인들이 순종을 했기 때문에…
더운 중동 지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여러번 왔다 갔다 하며 물을 채웠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누리고 하인들도 그 것을 통해서 믿음을 가지게 되고 축복을 얻게 됬다.
9절 –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하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하여 뿌듯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주인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한 것에 대해 큰 기쁨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쁨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지게 되었다.
하인들이 순종하자 그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을 전하는 역할을 감당하게 된 것이다.
복된 삶, 그리고 복의 근원이 되는 삶, 행복을 전하는 삶의 시작은 바로 순종에 있다.
아브라함은 아비 집을 떠나라는 명령에 순종했고, 모세는 지팡이로 홍해를 치라는 말씀에 순종했으며,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7일동안 돌라는 말씀에 순종했다.
순종했을 때에는 복을, 불순종 했을 때는 시련과 고통을 당한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하인들은 순종했다.
그것도 끝까지, 완전히 순종했다.
7절에 아귀까지 채우니…넘치도록…순종했다.
우리는 어떠한가?
왜 이렇게 순종하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않고 계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내 지식과 내 계산이 개입되어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순종하면 손해를 보는 것 같고, 도무지 계산이 맞이 않는다.
하나님께서 정말 해 주실까 라는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만약에 하인들이 자신들의 지식과 계산을 했다면 어땠을까?
이 포도주는 구경도 못 했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넘치도록 누리며 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확신을 기다리는데, 여러분, 이것은 꼭 기억하시길 바란다.
확신은 헌신을 할 때 생기는 것이다.
Commitment before certainty.
확신이 있어야 헌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헌신을 하면 확신이 생긴다.
그렇다면 어떻게 헌신을 할 수 있는가?
내 자신을 바라보면 안되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하고 순종하라고 하시는데 그렇게 말씀하시기 전에 모든 것을 먼저 내어 주셨고 헌신하셨다.
바로 독생자를 주시고 헌신하셨다.
오늘 본문 11절 –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영광 – 요한복음에 영광을 나타내셨다, 영광의 때 등이 나온다.
이와 연관되서 나오는 말씀이 예수께서 들리셨다 라는 말씀이다.
높이 들려 올라가신 것을 영광과 연관되어 요한은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 어디에 들리셨는가?
바로 십자가에 못 밖혀 들리심을 받으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헌신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 뿐이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밖혀 죽으실 때까지,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죽이시기까지 헌신하셨는데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그 작은 것, 헌신하고 순종하지 못할 이유 있나요?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으로 영원부터 가지고 계셨던 그 완벽한 관계를 끊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작은 것을 요구하시는데 순종 못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전적으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한 이야기만 나누겠다.
남자 아이는 많은 구슬이 있었고 여자 아이는 많은 인형이 있었다.
각자 가지고 잘 놀았다.
그런데 이제 실증이 났다.
서로 바꿔서 놀기로 하였다.
여자 아이는 인형을 다 줬고 남자 아이는 구슬을 거이 다 줬지만 몇개를 집에 숨겨 두었다.
서로 집으로 돌아갔다.
여자 아이는 너무도 즐겁게 그 구슬을 가지고 놀았다.
하지만 남자 아이의 머리 속에는 이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과연 저 여자 아이가, 나를 속이지 않고 모든 인형을 줬을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끼고 전적으로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넘쳐나는 축복과 행복을 누리며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전적으로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