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도회때도 말씀 드렸지만 목회자에게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절기 설교다.
같은 본문을 가지고 해마다 돌아오는 절기에 설교를 하자니 참 힘들다.
성탄절, 부활절, 감사절 등은 매년 찾아오는데 무언가 새로운 말씀을 전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또 다르게 생각을 해보면 저는 모든 설교는 성탄절의 설교이고 부활절의 설교이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인 하나님의 복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 그리고 삼일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
이 성탄의 메시지야 말로 기독교가 기독교인 이유이고 다른 종교들과는 다른 이유이다.
어떠한 도덕적인 설교나, 철학적인 메시지나, 나의 삶에 대한 해답을 주는 메시지들은 핵심이 아니다.
물론 이런 메시지들이 필요있고 전해져야 한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바로 복음이다.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우리가 마땅이 살았어야 할 삶을 사시고 죽었어야 할 죽음을 죽으셨다.
삼일만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은혜로 말미암아 거져 주셨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이고, 모든 설교는 이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한다.
오늘의 본문도 예외는 아니다.
바로 이 복음의 메시지가 선포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 태어 나셨다.
그런데 이 복음의 축복의 계절은 또한 너무도 큰 죄악과 마주하고 있다.
오늘 본문… 아는 내용이지만 성탄절에 많이 듣는 내용은 아니다.
그렇지만 너무도 중요하다.
바로 이것이 성탄의 이야기기 때문이다.
구유에 누어계신 분은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분은 죄악과 불의로 가득찬 이 세상으로 순종하며 오셨다.
죄악으로 가득찬 이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을 맞이하고 기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죽이려고 했다.
결과 베들레헴에 있는 두살 이하의 어린이들이 다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자신의 권력과 부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세상을 지키기 위하여 이 세상은 피를 보기 서슴치 않는다.
오늘날 이 세상에 얼마나 자신의 권력을 위하여 부를 위하여 피를 보기를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가?
아까 비디오에서도 봤듯이 다 자신의 세상만을 위하여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얼마나 다른가?
나의 이득과 나의 편리를 위하여 남을 헐뜻고 남을 무너뜨리는 일을 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아름답게 꾸며진 트리를 즐기며 좋은 음식을 나누며 선물을 주고 받으면서 이 이야기를 잊으면 안된다.
성탄의 이야기는 이렇게 큰 폭력과 불의로 시작이 된다.
마태는 예레미야 31:15의 말씀을 인용해서 우리에게 그 상황을 더 묵상하라고 한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다 포로로 잡혀간 상황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더 이상 소망이 없는 것 처럼 보인다.
그것처럼 베들레헴의 어머니들도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다음 내용도 봐야 할 것이다.
예레미야 3:16-1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절망적인 상황에서 여호와께서 역사하시고 소망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 소망은 바로 구유에 누어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성탄의 이야기는 이 어린 아이들의 죽음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이 죽음은 이 세상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그 죽음의 현장이 은혜가 주어진 현장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성탄의 트리를 보면서 다른 나무도 봐야한다.
이 나무는 아름답게 장식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물들었다.
이 나무가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물들었을 때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한다.
이것이 바로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즐거운 성탄절이다.
즐거운 이유는 소망이 없는 이곳에서 하나님께서 소망을 주셨고, 폭력이 남발하는 이곳에서 하나님은 평화를 주셨으며, 죽음 가운데서 하나님은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눠주시려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귀한 성탄절이 되자.
Merry Christmas ever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