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교회

가정과 교회

에베소서 5:22-33

따라 하십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도님의 덕분입니다. 은혜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잘 읽어 보시면 참으로 헷갈립니다.
아내와 남편 – 즉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부부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지나칠 정도로 부부관계를 이야기 하면서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32절을 보시면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 와 교회에 대하여 말한다”고 했다가 바로 이어서(33절)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고 했습니다.

이 본문은 도대체 교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인지? 가정에 대해 말하는 건지? 헷갈립니다.
이 본문은 가정과 교회에 대해 둘 다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을 통해 교회를 이야기 하고, 교회를 통해 가정을 이야기 합니다.
특히 가정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설명해야 할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도 가정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한때 유행했던 catchphrase “교회는 가정처럼, 가정은 교회처럼”라는 말과도 같은 의미입니다.
“교회는 확대된 가정이요, 가정은 축소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와 가정을 갈등관계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불신 남편을 두 아내들은 때때로 교회는 천국 같고 가정은 지옥 같아서 집에 들어가기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교회는 도피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크리스천 가정은 이렇게 되어서는 안됩니다.
가정과 교회의 관계를 상호보완적이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나라와 복음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라고 봐야 합니다.
1 . 본문이 말씀하는 교회의 모습부터 살펴 봅니다.
하나님께서 design하시고 계획하신 교회는 영광스러 운 교회입니다. 26~27절 말씀에 나옵니다.

주님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입니다.(27절)
왜? 교회가 영광스럽습니까?
1) 교회의 본질이 그렇습니다. – 주님께서 피로 값주고 사시고 우리를 깨끗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의 몸, 주님의 신부가 되었습니다.(이는 내 뼈중에 뼈요, 살중에 살이로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보고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나와 함께 가자”),
2) 교회의 역할(사명)때문입니다. –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입니다.(엡1:23)
전도 선교 봉사를 통해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것,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3) 교회의 소망이 그렇습니다. – 미래에 완성될 교회,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바라볼 때 교회는 영광스럽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가 일치됩니다.

이를 현실적으로 이루기 위해, 거창하게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가정과 같은 교회가 되면 됩니다.
교회는 엄마 품 같고, 언제나 돌아가면 반겨주는 내 고향 같고, 엄마가 따뜻한 밥을 해놓고 기다리는 내 가정과 같은 곳이어야 합니다. 사랑과 이해와 용서와
관용과 격려가 넘쳐나는 곳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약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이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가 가정과 같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납니다. 멀리합니다.

교회는 가정처럼 가장 약한 지체일 수로 귀히 여기고 잘 돌봐야 합니다.
*10명의 자녀가 있어도 부모의 관심은 잘사는 자녀, 똑똑한 자식이 아닙니다. 병약한 자식에게 더 맘이 가고 더 보살펴주는 것이 부모 마음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성도 서로간의 모든 사정을 알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쁜 일에 함께 기뻐해 주고, 슬픈 일에 함께 슬픔을 나눌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교인의 숫자가 너무 많은 대형교회는 문제점이 많습니다.
*서울에서 차량 접촉사고가 났습니다. 서로 삿대질 하며 싸웠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은 교회 장로 였다고 합니다.
참빛교회도 앞으로 교회가 성장해서 교인이 많아야 무슨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는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교회의 가족이 적을수록 더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교회로 세워갈 수 있고 말씀대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교인의 수가 적을 때도 가족 같은 교회가 되지 못하면서 교회가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은 nonsense 입니다.

2. 그러면, 가정은 어떠해야 합니까?

교회와 같은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가정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모릅니다.
지금의 가정은 더 이상 윤리와 도덕의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음란한 문화, 폭력적이고 비교육적이고 비도덕적인 지식과 정보가 인터넷, 스마트폰, 케이블방송을 통해 콸콸 쏟아져 들어 옵니다.
시커멓고 썩은 냄새가 나는 하수도 문화가 가정 안방까지 쏟아져 들어와 가정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또 문제가 되는 것은? 불신자는 말할 것 없고, 크리스천 가정마저도 가족이기주의, 가족행복주의에 매몰되어 가정을 주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전혀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가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편지히면서 몬1:2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라고 했습니다.
가정이 곧 교회의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날 현대 크리스천이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교회와 가정을 별개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주의 일은 교회에서만 하는 것이고, 가정은 내 개인의 행복을 위한 곳이기에, 가정에 와서 교회 이야기 하면 안되고, 교회와 상관없이 독립된 공동체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못된 생각입니다. 가정과 교회는 상호보완적입니다.

* 제가 아는 대구에 어느 교회는 출석 300명 교인이 되는데,대학교수가 50명 이상 출석합니다. 그런데 주일낮 예배만 드리고, 새벽기도는 30년전부터 없었습니다. 수요예배가 있긴 하지만 아예 참석하지 않습니다. 신앙활동, 봉사활동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모태신앙입니다. 주일낮예배 출석은 잘합니다. 성경말씀대로 혹 지옥이 있으면 지옥에 갈까 무서워서, 또 지금까지 믿어온 게 아까워서 겨우 한번 주일낮예배를 형식적으로 드리는 것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이상한 것은 가정은 끔찍이 챙깁니다. 가족을 생명같이 사랑합니다. 이게 가족이기주의라는 것입니다. 가정의 세속화 입니다. 이것 때문에 교회를 등한시 합니다. 신앙생활은 엉망으로 합니다.
오직 자신과 가족의 행복만을 위해 삽니다.

이런 교인들만 모인 교회는 영적으로 병든 교회이고 죽은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전혀 기뻐할 수 없는 교회 입니다.

3. 가정과 교회가 함께 힘써야 할 일

*아담와 하와가 살던 에덴동산을 보십시오.
아담 가정이 교회이고, 교회가 곧 가정이었습니다.
가정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channel입니다.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못한 자녀들은 하나님을 아버지 로 받아들이는데 매우 어려워합니다.(*교도소)
교회는 가정에 관심을 가지고 잘 보살펴야 하고, 가정은 교회를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작은 교회로서 거룩하고 구별돼야 하며, 복음의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예) 행28:30-31에 보면,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절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고 했습니다.
셋집에 살면서도 많은 사람을 초대했고 가정을 open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가정은 폐쇄적이면 안됩니다. 개방적으로 세상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와서 상담도 할 수 있고,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손님이 오면 기꺼이 환영하고 성도들을 초대하여 대접하고 섬기는 사역을 감당하는 사역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정에서는 여러분이 목사요, 사모요, 전도사 입니다. 가족이기주의에 매몰되지 마시고, 나의 소중 한 가정마저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복음을 전하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동차, 여러분의 넓은 집…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이 주를 위하여 어떻게 사용되고 있습니까?

*어떤 분은 구역예배 드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람 오는 것을 싫어합니다. 집을 청소해야 하고 다과도 준비해야 하고 귀찮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살림살이가 누추하다고 자신의 집을 공개하는 것을 꺼려 합니다. 물론 새가족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 신자들은 이미 주안에서 복음으로 열등감, 비교의식, 경쟁의식에서 자유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성도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정직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까지 와서 가면을 쓰고, 맘에도 없는 말을 하고, 표정관리를 하느라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죄가 무엇입니까? 남의 것 도적질하고 거짓말하고, 남을 때리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면 차원이 낮은 죄인식입니다.
적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주님이 불편해 하시고 실망하시고 근심하시면, 그것이 나의 죄가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주님을 의식하면 거리낌이 있고 양심의 가책이 있고, 아니면 반대로 주님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영적으로 무감각하고 대화(기도)가 없고, 주님과 거리를 두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진짜 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희생하신 것처럼 용서하신 것처럼…살지 못하면서, 남에게 크게 피해 주지 아니하고 적당히 내 행복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을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만족하면서 그런 삶에 안주한다면, 그것이 죄입니다.
이것을 오늘 마음으로 느끼고 깨달아서 “주님 잘못 살았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런다면 여러분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끝으로 교회와 가정의 공통점의 기반 위에서 교회와 가정이 힘써야 할 일을 생각해 봅시다.

1)하나님이 세우신 신적 기관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입니다.
성경을 보면 가정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마리아 요셉의 가정을 통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또한 30년간 가정에서 충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치신 후에 네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결혼을 죄악시 합니다. 자신이 도를 닦는데 장애물로 여깁니다.(*예: 성철스님, 가톨릭 성직자 독신제도…)
그러나 그 엄격한 구약의 제사장도 반드시 결혼한 사람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로 아내와 함께 복음을 전했습니다.
-부부의 불륜이나 자녀들의 반항은 사형에 해당하는 악한 죄로 규정했습니다. 가정 파괴범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또 결혼은 영구적인 것이요, 이혼을 허용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 성경에는 가정생활에 대한 교훈이 많고, 가정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져 있습니다. (아담 가정, 노아.아브라함, 이삭, 야곱..모세, 다윗..요셉과 마리아..등등)
-십계명 전부가 직간접적으로 가정과 관련한 계명 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도 무너지고 국가도 무너진다.

2) 진리를 계승하는 학교
가정과 교회는 진리를 전승하는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은 진리를 전달하는 400M 계주경기와도 같습니다.
가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현장입니다. “좋은 것을 잘 배우지 못하면 나쁜 것을 더 잘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우리 자녀들에게 “평생 지속할 좋은 습관”을 물려 주도록 힘써야 합니다.
M. Luther는 “가정, 교회, 학교 가운데 교육의 목표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곳은 가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밥상머리학교” “엄마무릎학교”가 중요합니다.

3) 인간관계의 기초(교회 갈등-인격연마, 자신을 앎)
지도자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또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에는 “성실, 신뢰, 용기, 의리, 정직, 인내, 사랑, 관용, 온유, 희생.등”이 다 포함 됩니다. 이런 것들이 잘 갖추어져야 지도자가 됩니다.
이런 것은 바로 가정과 교회에서 어릴 때부터 키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감독, 장로, 집사의 자격을 보면 공통적인 것이 있다. 그것은 “가정을 잘 돌보는 자”입니다.
*감독의 자격(딤전3:2-7):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4절,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5절,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장로의 자격(딛1:5,6): “한 아내의 남편이 되고 방탕하다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니라”
*집사의 자격(딤전3:8-13): 12절을 보면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라고 했다.
직분자의 자격을 보면 별 차이가 없습니다. 직분자의 하향평준화 되어서는 안됩니다.

한 아내의 남편이라는 표현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자녀들에게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 안정감을 얻고 신뢰를 배우고 인간관계의 능력을 배우게 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자녀의 부모가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행복은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4) 축복의 그릇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있지만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자녀는 축복이요, 상급입니다.
구약성경에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가지 못할 자가 가운데 “사생자와 고자”가 있습니다(신23:1-2).
이 말씀의 영적 의미가 무엇일까요?

사생자는 아버지가 누군지를 모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즉 mentor(스승)가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자신이 잘못했을 때 책망해 줄 수 없는 사람, 인생을 바로 살 수 있도록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저주입니다.
그러면 “신낭이 상한 자” “고자”는 무슨 뜻인가? 자녀를 생산할 수 없는 사람, 후손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반드시 진리를 deliver해줄 수 있는 mentee(제자)가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여러분의 멘토는 누구입니까?
또 여러분은 영적 자녀(mentee)를 가지고 있고, 잘 돌보고 있습니까?

5) 천국의 모형
가정이나 교회는 작은 천국의 모형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선물입니다.
만약 우리의 집의 아이들이 교회를 갔다 와서 대뜸 묻기를 “엄마 아빠~! 천국은 어떤 곳이야?”
이렇게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그때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흠~천국은 말이야? 너희들과 아빠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집과도 같단다”
그러면 자녀들이 “아! 그래요~! 그러면 참 행복한 곳이군요. 빨리 가고 싶어요.”
이런 반응이 나와야 하는데, “에잇!~그러면 난 천국 안 갈래!”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6) 사랑과 용서의 실습지
사람에게는 3개의 자아가 있습니다.
영적자아, 정신적자아, 신체적자아입니다.
영적자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집니다.
신체적 자아는 음식으로 채워집니다.
그런데 정신적자아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으로 채워집니다.
인간에게는 영원한 사랑의 목마름이 있습니다. 인간은 사랑에 굶주린 동물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랑을 공급받지 않으면 가짜라도 사서 먹게 됩니다.
특히 남자들이 아내에게 사랑 받지 못하면 술집 아가씨에게 돈을 주고서라도 사먹습니다.
가짜 사랑인줄 알면서도…

이렇게 사랑이 중요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교회를 떠납니다. 이단에 빠집니다.
*원숭이 실험– 엄마를 잃은 새끼 원숭이에게 쇠로 된 엄마모형 2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나는 쇠로 된 모형에서는 우유가 나오게 했고, 다른 하나는 쇠로 된 모형에 털실로 감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관찰해 보니까, 새끼 원숭이가 배고프면 쇠로 된 엄마 모형에 가서 우유를 빨고, 놀기는 헝겊과 털실로 된 엄마모형에 안겨 떨어질 줄 모르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비타민ABCD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따뜻하게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사랑입니다. 갈5:13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엡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용서로 나타나야 합니다. 가정과 교회에는 반드시 용서라는 피뿌림이 필요 합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끼리(중요한 타인) 가장 상처를 많이 주고 받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신앙의 수준도 다 다릅니다. 성장과정과 경험이 다 다릅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지 않으면 공동체로서 존속되기 어렵습니다.
*결혼에는 사계절이 있습니다. – 환희의 계절, 실망의 계절, 절망의 계절, 성숙의 계절입니다.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결혼도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용서는 사랑의 가장 높은 단계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주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관계를 지속시키는 모든 기초는 용서입니다.

7) 능력의 충전지
가정과 교회는 은혜로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생존경쟁이 치열합니다. 경쟁사회에서 피 터지게 투쟁을 하고 패잔병처럼 돌아오는 남편, 자녀들에게 따뜻하게 맞아주고 용기를 주고, 새 힘을 북돋아 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격려, 칭찬, 경청…이 매우 중요합니다.)
칭찬과 격려라는 보약보다 더 좋은 보약은 없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모든 학교 직장 단체는 능력본위 입니다. 잘하면 상받고 칭찬받고, 못하면 비판받고 무시당하고 밀려나는 곳입니다.
그러나 교회와 가정만은 그러면 안됩니다.
못해도 비판받지 않고 위로받고 격려받고 치유받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좋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런 말씀을 통해 내 인격의 변화가 일어나고, 참으로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때때로 교회 안에도 갈등이 있습니다.
그 갈등을 통해 내 인격의 부족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1% 잘못된 내 인격과 성품을 고치기 위해서 때론 99% 잘못된 사람을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살면 편하겠지만 그러나 앞에서 말한 영적 인격과 정신적인 성숙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관계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아무쪼록 참빛교회는 가정처럼 따뜻하고 가정은 교회처럼 거룩하고 경건한 가정을 데 세워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 가정과 교회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몸을 내어주심 같
이 우리도 가정과 교회를 섬길 때 주님의 사랑과 용서, 희생과 인내를 실천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뜻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교회와 가정을 통해 우리 자신이 더욱 성장하게 하시고,
좀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성령의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가정이, 우리 참빛교회가 더욱 사랑하고 행복한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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