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사심을 증거하라
사도행전 10:34-43
할렐루야! 예수님은 다시 사셨습니다! 과연 그는 다시 사셨습니다!
오늘은 가장 기쁜 날이고 가장 중요한 날이다. 부활절은 기독교에서 가장 큰 절기이고 부활절이 없다면 기독교는 없을 것이다. 교회가 성탄절을 정기적으로 지키기 전에 이미 부활절은 교회에서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 드리면 부활절만큼 목회자로서 부담 있는 절기도 없다. 가장 부담스러운 절기들을 생각해 보자면 부활절과 성탄절이다. 다른 절기들은 많은 교인들이 잘 모른다. 성막절, 칠칠절, 맥추절, 등 등. 여러가지 절기들이 있는데 잘 모르기 때문에 설명하면 되고 거기에 맞는 말씀을 드리면 된다. 그런데 성탄절이나 부활절은 설교자로서 너무 부담이 된다. 본문은 한정되어 있고 내용은 초신자라 할지라도 다 아는 내용들이다. 그러니 새로운 것을 말하고 새로운 감동을 주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몇칠전, 우리 교단 안에 교단의 개혁을 위해 연대하는 단체인 The Fellowship 이라는 단체에서 이메일을 받았다. 부활절 설교에 부담이 있으면 꼭 이 글을 읽어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감동을 주는 설교의 아이디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기쁜 마음으로 그 글을 열어서 읽어보았다. 내용은 이것이다. 부활절 설교가 부담되는 목회자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부활을 설교하면 된다 라는 내용이다. 처음엔 너무 뻔한 얘기다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것이 진리이다.
부활절에 무엇을 설교하겠는가? 부활을 설교하면 된다. 그런데 부활은 부활절에만 설교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매번 증거해야 하는 것이고 설교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 외에 전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목회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다른 소리를 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설교가 되겠느냐 말이다.
어느 사람이 유명한 설교가인 Spurgeon 목사에게 말했다. 목사님의 설교는 좋은데 맨날 똑 같은 이야기만 한다는 것이다. 맨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결론이 난다는 것이다. 그때 Spurgeon 목사님의 답은 그러면 감사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그 것 외에 다른 말을 한다면 자신이 부끄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도덕적인 이야기, 세상의 이치에 관한 이야기, 올바른 삶에 대한 방식 등 여러가지를 설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복음으로 풀지 않고 거기서 멈춘다면 그것은 헛된 것이다. 복음만을 교회에선 증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 복음의 핵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건이 있다. 부활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이렇게 이야기 한다.
고린도전서 15:12-19 –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 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의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아네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헛된 것이다.
어제 신문 기사를 읽었다. 왜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예수의 부활을 믿는가? 내용을 보면 역사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부활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어리석은 것 같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기사가 정확히 본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부활이 믿지 않았다면 기독교도 없다는 내용이다. 부활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부활을 믿어야만 기독교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더 나아가면 부활은 사실이다. 예수께서는 부활 후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몸을 직접 보여주셨다. 그리고 복음서들이 기록되었을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들이 살아 있었다. 만일 사실이 아니라면 복음서 저자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바로 들통 났을 것이다. 그런데 복음서의 기록들을 사람들이 받아 드렸다. 왜냐하면 그 중에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부활을 증거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그렇다면 왜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인가?
그것은 바로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완전히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부활이 없었으면 우리의 믿음이 헛되고 우리가 아직 죄 가운데 있었을 것이라고 사도바울은 말한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그 죄의 대가를 십자가 위에서 치뤄 주셨는데 부활이 없다면 죄의 대가인 사망이 승리한 것이고 우리 모두가 다 사망의 권세 아래 있다는 것이다. 사망은 하나님의 적이 가진 가장 큰 무기이다. 그 권세 아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사셨기 때문에 우리는 온전히 죄에서 해방된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몸이 예수처럼 부활해 하나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는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부활을 믿으면서도 우리의 몸의 부활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몸 또한 부활 할 것이다. 우리의 영과 육신은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의 온전한 모습은 이 모든 것이 새롭게 된 모습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우리는 새로운 몸을 가지고 새로운 영으로 하나님과 함께 지내게 될 것이다. 이 소망의 첫 열매가 바로 우리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분의 부활이다.
그런데 부활이 있으려면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죽음이다. 십자가다. 십자가가 없으면 부활도 없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부활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 돌아가셨는가? 바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려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다. 너무 뻔한 이야기이고 너무 많이 들은 이야기이고 다 아는 이야기여서 그냥 넘기기가 쉽다. 하지만 잠시 깊게 생각해 보길 바란다. 이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다는 것이 무엇인지. 내 죄를 예수께서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오르셨다. 만왕의 왕 내 주께서 나를 위해 고초를 당하셨다. 죄 없으신 그 분이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받으셨다. 영원토록 성부와 성령 하나님과 함께 완전한 사랑의 모습인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내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셨다. 그 온전한 관계에서 찢음을 당하셨다. 왜? 내 죄 땜에. 나 때문에.
사사기 성경공부 시간에 한번 말씀 드린 적이 있다. 성경에서 나무는 심판의 장소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주어진 첫 계명이 나무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맺는 그 나무에서 인간이 하나님 앞에 심판을 당하게 된다. 나무에 매달려 죽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뜻한다.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을 배신했다가 나무에 걸려서 죽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도 나무 위에서 죽으셨다.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신 것이다. 육신적으로 가장 아픈 고통을 당하시면서, 또한 영적으로 육신의 고통보다 훨씬 더한 고통을 당하시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히 외면 당하시고 버림 당하셨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 바로 우리가 있었어야 했던 곳이 십자가 위다. 거기서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다.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죽인 것이나 다름 없다.
The Passion of Christ 를 감독한 Mel Gibson 은 영화에는 얼굴을 보이며 출연을 하지는 않지만 딱 한 장면 나온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그 장면, 망치를 쥐고 있던 손이 바로 Mel Gibson 의 손이다. 자신의 손으로 예수를 못 박았다라고 하는 고백이다.
우리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절대로 잊으면 안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과 섭리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이다. 사망은 그를 무덤에 갇아두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사탄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무기를 이기셨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예배 드릴 수 있는 이유이고 우리가 모여 함께 축하하고 지키는 부활절의 의미이다.
이렇게 큰 사랑으로 새 생명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부활을,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을 증거하며 사는 삶이다.
오늘 본문을 보면 베드로는 고넬료라는 이방인을 만나고 고넬료에게 이 복음의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역하셨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시며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셨는지를 설명한다. 그런 예수를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았고, 하나님은 삼일만에 그를 부활시켜 주셨다. 그리고 주신 사명은 이것이다.
42-43절 –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은혜를 받은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살아야 한다. 이 땅에 소망으로 오신 그 분을 증거해야 한다. 어둠 가운데 참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살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다 이런 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로서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찬양이 있다. 그 찬양의 답가가 있는데 제목이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이다. 우리가 사랑을 받았으면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그 열매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백성이 늘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 세상으로 보내신 사랑의 편지이다. 그 역할을 잘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그 역할을 잘 감당하며 우리 교회가 새롭게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예수는 부활을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셨다. 그 소망을 가지고 새로운 모습으로 나아가는 우리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런 다짐으로 우리는 “덴버한인중부장로교회”에서 “참빛교회”로 새롭게 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중부장로교회라는 이름이 얼마나 많은 분을에게 큰 의미가 있는지 안다. 그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데까지 얼마나 큰 결정이었는지도 안다. 아직도 중부장로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를 바라는 분들도 계시리라 믿는다. 지금까지 이 덴버지역에 많은 영향력을 미친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중부장로교회를 통해서 역사하신 것에 감사드린다.
하지만 이제는 또한 새로운 도약을 해야 하는 시간이라고 믿는다. 단순히 이름을 바꾸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이름은 중요하다. 성경적으로 봐도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중부장로교회라는 이름이 잘못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역사를 위하여 새롭게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브람이 아브라함, 사례가 사라, 야곱이 이스라엘, 시몬이 베드로, 그리고 사울이 바울이 된 것처럼 중부장로교회가 참빛교회 나아가며 더 큰 사역을 감당하기를 소망한다. 중부장로교회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 주시는 사역에 더 맞는 이름을 가지고 나아가자는 것이다. 우려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한가지 분명이 말씀 드리는 것은 우리의 뿌리, 우리의 역사, 우리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다 한마음, 한 뜻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 내가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더라도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나가 되어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참빛교회라는 이름으로 나아간다. 이 세상에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삼고 내 뜻과 내 의견을 내세우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을 증거하는 교회. 소망이 없는 이 세상에 소망으로 오시고, 어둠이 가득한 이 세상에 참 빛을 비춰 주신 예수를 증거하는 교회. 그래서 주 안에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셨다. 정녕 그분은 다시 사셨다. 우리 모두 참 빛이신 예수의 부활을 선포하며 이 부활절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며 주님의 은혜로 새롭게 도약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우리 참빛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이 지역에 가득하기를 소망한다.